정보화마을 충남 청양 사자산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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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청양 사자산마을 전경사진입니다.
사자산마을 안내지도, 신대2리는 100여개가 넘는 고유지명을 간직한 마을로 운곡사 터를 중심으로 100여개의 골짜기가 있고 그 골짜기마다 고유한 지명의 유래와 이야기가 전해 내려오고 있습니다. 이름의 유래가 되는 지명들을 살펴보면 생태에서 유래한 지명, 종교와 인문 유래 지명, 풍수 및 지형 유래 지명, 사건관련 지명, 산업관련 지명으로 나누어집니다. 마을에 오시면 꼭 사자산마을길라잡이를 읽어보세요. 재미있는 마을이야기가 펼쳐집니다. 도로뜸냉정골동구나무석장승운곡마을유래비중뜸원두골운곡사터광산터사재미마을 도로따라 구경하기 안골 원두골

동구나무

동구나무

"동구밖 과수원길 아카시아꽃이 활짝 피었네~" 라는 노랫말이 있습니다. 동구는 마을의 입구입니다. 마을의 입구에는 항상 일종의 성황당 역할도 하는 큰 나무가 있었고 우리는 그런 나무를 동구나무라고 부릅니다. 신대2리 마을 입구에는 두 세 그루의 동구나무가 석장승과 함께 마을 입구를 지키고 있습니다.

석장승

석장승

해마다 목장승을 깎아 세우던 것을 1992년경부터 돌로 장승을 깎아 세운 후 수고를 덜었습니다. 장승 곁에는 동구나무가 있어 그늘을 제공하니 동구나무 아래 털썩 앉아서 옛날 이곳을 지나다니던 마을사람들의 모습을 상상해 볼 수 있습니다.

* 동구나무와 장승이 서 있던 인근에는 병원터라 불리는 곳이 있습니다. 일제강점기 금광의 번창과 더불어 병원이 운영되었다고 합니다.

냉정골 사진입니다.

냉정골

과거 냉정골에 해당되는 제당골 대망골, 백토구데기를 통틀어 40여호가 넘는 사람들이 살았다 하니 꽤나 큰 골짜기입니다. 입구에 들어서면 감나무가 많이 있고, 돌로 만들었던 축대도 상당수 보이는 것은 옛 집터들의 흔적이고, 실개천을 흐르는 물의 양이 많은 것은 이 곳이 깊고도 넓은 골짜기라고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냉정골'이란 말 그대로 차가운 우물이 있어 냉정골이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실제 위쪽으로 올라가면 꽤 큰 우물터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제는 수량이 예전 같지 않지만 그래도 그 우물터를 통해서 아래쪽으로 물들이 흘러가니 이 우물이야 말로 물들의 뿌리가 됩니다. 예로부터 냉정의 우물은 병을 고치고 귀한 장을 담글 때 쓰는 약수로 인근에서 그 이름이 높았다고 합니다.

마을유래비 사진입니다.

운곡마을유래비

운곡마을의 중뜸 입구에는 마을센터(마을회관)이 있고, 회관의 왼쪽 옆에 최근에 세워진 운곡마을 유래비가 있습니다. 함평이씨 문중에서 입향기를 쓰고, 더불어 마을의 유래에 대해 음각으로 기록한 비석입니다.

도로뜸 사진입니다.

도로뜸

저수지에서 동구나무와 석장승을 지나 마을 입구에 들어섭니다. 눈에 띄는 모습은 돌로 담을 쌓은 돌담밭들입니다. 마치 제주도의 그것을 보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독특한 풍경을 연출하고 있습니다. 과거 집터를 밭으로 일궈서 그렇게 된 것일까요? 아니면 돌 자체가 많아서 밭에서 골라낸 돌로 경계를 만들어서 일까요?

중뜸마을로 가는 길에 안골로 들어가는 입구가 갈라지면서 집들이 한 채 두채 나타납니다. 이 곳이 '사자미서 나와도 도로뜸 안골에서 나와도 도로 도로뜸'이란 어르신들의 말처럼 도로 나온다는 도로뜸입니다. 아마도 마을로 들어갈 때 돌아드는 뜸이라고 도로뜸이라 이름짓지 않았을까요.

침식분지로 이뤄진 도로뜸은 안골의 입구입니다. 왼쪽으로는 대나무와 오래된 감나무가 있고 산쪽에서는 어치와 호랑지빠귀가 있는 참나무 숲이 보입니다. 그 옆 중뜸 쪽으로 가는 산자락 끝에는 수백여개의 장독들이 눈에 띕니다. 익어가는 장맛을 눈으로 느낄 수 있습니다.

중뜸 사진입니다.

중뜸

중뜸은 신대2리 사자산마을의 중심이 되는 마을입니다.
과거 일제강점기 광산이 전성기일때는 606호가 살았다고 합니다. 지금은 조용하고 소박한 시골마을의 모습을 하고 있으니 수천명의 사람들이 오가며 불야성을 이뤘다는 어르신들의 이야기가 잘 믿겨지지 않습니다. 마을 앞을 들어서며 경로당이 보입니다. 꽤 좁은 골목들 사이로 빈 집터가 보이는 거리를 거닐어 봅니다. 과거 장터와 극장이 있고 간드레(칸델라)불빛이 서울의 명동거리 같았다는 술집골목이 있었답니다. 청양읍에도 없었던 전기가 제일 먼저 들어온 동네가 이 곳 사자산마을이라며 열심히 설명해주시는 어르신들의 이야기를 듣습니다. 그리고 잠시 눈을 감고 80여년전을 상상해봅니다.

안골 사진입니다.

안골

안쪽에 있는 골짜기라는 뜻으로 도로뜸에서 안쪽으로 들어간 골짜기에서 가장 큰 동네입니다. 재미있는 이름들이 많은 골짜기들이 안골고랑을 따라 나타납니다. 입구에는 기도원도 있습니다.

원두골 사진입니다.

원두골

원두골은 작은 골짜기입니다. 사자산 자락의 골짜기들은 모두 사자산과 연관된 지명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원두골은 원래 사자의 머리 부분에 해당하는 골짜기라는 뜻으로 원두골 이랍니다. 혹시 관의 숙박시설이던 원이 존재해서 원두골은 아닌지 찾아보았는데, 인근에는 인의원이란 숙박시설이 바로 산 넘어 상갑리에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니 원래 사자의 머리라는 뜻이 설득력이 있습니다.

  • 옛날 교통-통신과 관련한 시설로는 역-교통, 원-숙박, 봉수-통신, 주막-편의시설 등이 있었는데, 주막을 제외하고는 모두 나라에서 직접 운영하였습니다.

운곡사터 사진입니다.

운곡사터

청양군에 존재하던 사찰로서 신증동국여지승람의 기록으로 확인해 보면, 칠갑산 - 장곡사/정혜사/도림사/묘봉사, 백월산 - 정련사/백월암/월산사, 계봉산 - 계봉사/남포사/서연사, 구봉산 - 화정사, 사자산 - 운곡사가 있었습니다.
현재까지 남아있는 사찰로는 오직 장곡사와 정혜사 뿐이며, 그나마 운곡사는 도림사와 더불어 그 유지(遺址)가 남아 있는 곳입니다.

문헌상으로는 신증동국여지승람이 발간되던 시기인 1530년(중종 25년)까지는 운곡사가 존재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큰 사찰이 사라졌음에도 의외로 유물들이 많이 발견되지 못하고 있는 것은 금광 등의 개발과 더불어 급속도로 사람들의 왕래가 잦아지고 일제강점기의 문화재 침탈이라는 특수환경과 더불어 1960년대의 음성적인 문화재거래를 통해 많은 양의 유구들이 밀반출되고 사라지게 되었던 것으로 추측됩니다.

사재미마을 사진입니다.

사재미마을

사자의 꼬리가 되는 곳에 위치한 마을이라서 사재미마을입니다. 신대2리의 사자산마을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하는 마을로 마을을 들어서며 정면 왼쪽으로는 옻박산이 솟아있고 오른쪽으로 해가 뜨는 곳으로는 국사봉이 높게 솟아 마을에서도 그 어느 곳 보다 전형적인 산촌의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경사지를 밭과 논으로 개간하느라 사재미마을에는 다랭이논과 밭이 많이 있습니다.

광산터 사진입니다.

광산터

일제시대부터 운영되던 금광으로 한때 마을에는 장이 서고 극장이 있고, 밤이 낮처럼 밝았다고 합니다. 총 606가구에 4천2백여명까지 살았던 마을의 번창이 이 금광의 흥망과 함께 했습니다. 인근 운곡초등학교 학생들의 단골 소풍터이며 견학장이었던 삼광광산이란 이름의 금광은 1992년에 폐광하게 됩니다.

금이 섞여 있는 바위 1톤에서 5g정도의 금가루가 나와주면 경제성이 있다고 하는데 사자산마을의 금광은 8g정도의 금이 생산되어 꽤 양질의 금광이었다고 합니다. 이제는 채산성이 악화되어 더 이상 금을 생산하지 않습니다.

현재는 폐광에 대해 공부하는 학생과 환경과 관련해 견학을 하는 관광버스들이 자주 들락이는 곳이 되었습니다. 이 광산으로 인해 일제강점기 신대2리는 사람들로 북적이는 마을이었습니다. 하지만 금의 채굴이 끝난 지금은 옛 영화는 사라지고 그 터만이 상처로 남아있습니다.